2. 우거인의 문학 순천은 지리적으로 남쪽 해안에 위치하여 한양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이 불편하여 남해안의 다른 지역과 더불어 유배의 대상지였다. 이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곳에 귀양살이로 머물게 되었다. {승평지}나 {한국인명대사전}에 나타난 유배자 중 중요한 인물로는 고려 공양왕 때 이종학, 조선 태종 때 공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이곳으로 이배(移配)하여 온 조위와 김굉필, 1545년(명종 1) 을사사화 때 이조좌랑 노수신, 1546년에 전라관찰사 권응창, 순조 때 한재렴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조위, 노수신, 한재렴 등은 당대의 문장들로서 이곳에 머물면서 문학과 유학으로 지역민들과 교류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그들의 시문이 {승평지}에 수록되어 전한다. 이들은 여기에 잠시 머물다 간 우거인에 불과하지만 한미(寒微)한 이 지역에 중앙문학의 영향을 끼친 바가 컸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문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위(1454∼1503)의 본관은 창녕이요, 자가 태허(太虛), 호는 매계,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현감 계문의 아들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자 처남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시제(詩題)에서 수차 장원하여 문명을 떨쳤고 유호인과 함께 성종의 총애를 받아 검토관 시독관으로 경연(經筵)에 참가했으며, 성리학의 대가로 신진사류의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32세 때는 노모를 봉양코자 사퇴하려 했으나 허락되지 않다가 고향인 함양군수로 전임되어 그곳에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어 도승지 충청관찰사 등을 역임했으며, 1495년 대사성으로 지춘추관사가 되어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때 사관 김일손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수록하여 올리자 원문대로 편찬케 했다. 이로 발생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조위는 명나라에 성절사로 다녀오던 중 체포되어 의주에 장류되었다가 순천으로 이배, 5년간 유배생활을 하던 중 병사했다. 조위의 가사작품인 [만분가(萬憤歌)]는 이런 자신의 비분함을 성종께 하소연하는 심정에서 지은 것으로 마치 초나라 굴원이 [이소]를 지어 그의 원통함을 호소했던 것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연군가적 유배가사의 단초를 이루었으며 훗날 송강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서정적 유배가사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작품의 서사에서는 자기를 임과 이별한 여인으로 설정하고 시적 정황을 축약적으로 진술하여 자신의 처지와 욕구를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천상 백옥경 십이루 어듸매오 오색운 깁픈곳의 자청전(紫淸殿)이 려시니 천문 구만리를 이라도 갈동말동 라리 싀여지여 억만번 변화?殆? 남산 느즌봄의 두견의 넉시되여 이화(梨花)가디 우희 밤낫즐 못울거든 삼청동리(三淸洞裏)의 졈은?膨? 구름되여 람에 흘리 라 자미궁(紫微宮)의 라올라 옥황 향안전의 지척(咫尺)의 나아안자 흉중(胸中)의 사힌말 슬커시 로리라 조위는 서문 밖 옥천가에 임청대를 쌓고 마을사람들과 진솔회를 조직하여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밥과 나물이며 술항아리를 진설하고 냇물에서 잡은 고기와 국을 끓여 먹으면서 바둑, 시가, 담론 등을 즐기며 땅거미가 질 때 흩어져 달빛을 밟으며 돌아가곤 했다. 이러한 풍류 중에 창작된 시문도 많을 터인데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승평속지}에 상호정(相好亭)의 경물을 노래한 한 편의 시가 유일하게 전하고 있어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집이 홀로 병화중(兵火中)에 존하니 등림(登臨)한 이날에 이 다함이 없네 연(煙)이 박모(薄暮)에 생기니 천촌(千村)이 합하고 장마가 평교에 쌓이니 이수가 한가지네 덜익은 추감은 채석강 달이오 끝이 없는 춘흥은 무우의 바람이 이네 호산의 경물이 아주 옛과 같으니 가성을 떨어뜨리지 말고 시종(始終)을 힘쓰라 상호정은 세조 때 조지산 조지곤 조지윤 조지강 등 4형제가 벼슬을 사양하고 지은 정자로, 화목하게 같이 살며 '상호정'이라 현판하였다. 이는 부유현에 있었는데 명승들의 시문이 많았다고 {신증승평지}에 전한다. 노수신(1515∼1590)의 본관은 광주요, 자가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다. 활인서별제인 홍(鴻)의 아들로 중종 때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수찬을 거쳐 정언에 올랐다. 을사사화로 이조좌랑의 자리에 있다가 1547년 순천으로 유배되었고, 진도로 이배되어 19년을 섬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선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대사헌, 이조판서, 대제학 그리고 3정승을 지냈다. 그는 문장과 서예에 능했고 양명학에도 일가견을 이루었다. 그의 시는 {승평지}에 한 편이 전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환선정차운] 이십팔일 초가을 밤이요 삼천리 약수(弱水)의 앞이로다 승평에 좋은 누각인데 우주에는 신선이 몇 분이나 되는고 굽은 난간 청풍이 스쳐가고 높은 하늘에 소월(素月)이 달렸구나 추연히 크게 휘파람 부니 외로운 학이 비틀거리며 지나네 한재렴(1775∼1818)의 본관은 청주요, 자는 제원(霽園), 호는 심원(心遠)이다. 진사 석호(錫祜)의 아들로 고체시에 뛰어났다. 박지원 정약용 신위 등과 교유가 있었으며 정조 때 응제에 응시해 시명(詩名)을 천하에 떨쳐 포의(布衣)로 소지(所知)를 제수받았고 순조 초기 무고로 순천에 유배되어 5년간 후진양성에 힘썼다.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대과에 응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문집으로 {심원당시문초(心遠堂詩文抄)}가 전한다. 심원의 작품은 {신증승평지}와 {승평속지}에 수록된 바, "맑은 물이 동서로 벽옥처럼 흐르니 칠분의 명월은 옛날의 서주(徐州)로다 술 깬 오늘 저녁 어느 곳인줄 알까? 애간장 끓는 성남 쪽 연자루라네", "촌파(村婆)가 손뼉을 쳐서 온 이웃이 요란하니 북녘 나그네 처음으로 실조개를 맛보네 고깃국에 흰 쌀밥을 곁들이니 오래도록 해남사람 되기를 사양치 않으리라"고 읊어 유배지에서 자신의 외로운 심정과 주민들의 소박한 인심을 맛보며 어울려 사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승평십영(昇平十詠)]의 전반부에서는 연자루, 임청대, 매산고원, 모옥, 수죽 등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렸고 후반부에서는 석수어, 복쟁이, 실조개, 은어, 생오징어, 자하 등 수산물의 풍미를 노래하였다. 또 사철기상에 따라 유배자의 심정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춘(春) 가지마다 꽃들이 피니 꾀꼬리는 풀이 길어날 때 날으네 강남이 이같이 좋으니 북쪽 사람들에게 알게 하리라 하(夏) 만목이 청류한 밖에 심심(沈沈)하여 화각이 싸늘하네 풍이 솔솔 불어오니 광활한 곳에 혼자서 난간을 기대네 추(秋) 천하에 몹시도 슬픈 곳 강남이 노랗게 물들인 가을이네 고포(菰蒲)는 아득히 가는데 낚싯대 드리우고 편주(扁舟) 앉았네 동(冬) 이미 천간죽(千竿竹)이 있는데 어찌 백본매(百本梅)가 없으리오 시내다리 풍설 속에 때때로 노새타고 다시 찾아오네 조(朝) 난간 밖에 햇빛이 다투어 나오니 단하(丹霞)는 차례로 몇 봉우린가 야연(野烟)이 곡무(谷霧)와 합하니 산수가 중중(重重)으로 둘렀네 모(暮) 낙일(落日)이 서령을 넘으니 희미하고 아득하여 야화가 반짝이네 고기잡이 나무꾼들 앞길이 어두우니 서로가 다같이 시냇물 건너 돌아가네 설(雪) 남토에 겨울이 항상 따뜻함에 설화가 땅에 이른 적이 없네 밤이 옴에 절죽소리 들으니 탄분하여 신원(新圓)을 본뜨네 월(月) 소월이 수풀 밖에 나오니 연연히 죽서에 이르구나 하늘의 청명함이 물쌓인 것 같으니 뜰 아래가 바로 청계일세 연(烟) 다만 연중(烟中)의 나무만 보이고 연외 마을은 알지 못하겠네 앞 산이 응당 다시 멀어지니 운기가 황혼에 섞이었네 우(雨) 흑풍이 해기를 부니 소나기가 남산을 지나구나 운수가 명몽(冥 )한 속에 편편히 백로 한 마리 돌아오네 이 고장의 풍물과 인심을 전체적으로 읊은 작품으로는 위의 [승평십영] 이외에도 오용묵의 [무평절구십수(武平絶句十首)]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신증승평지}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동천과 옥천이 만나고, 석류꽃 피고 귤이 달게 익으며 1년에 눈 3번 보기 힘든 이 강남이 양조(陽鳥)의 고향이라 하였고, 청루(靑樓)에서 유녀(遊女)와 봄날의 가무를 즐기며 은잉어, 석수어 등 바다 마을의 풍미를 맛보니 좋고, 사재(四齋)에 글 읽는 소리 상쾌한 새벽을 맞으며, 이 강남에 삼도수(三島水)가 있으니 외로운 배, 밝은 달, 신선을 불러 함께 한다고 읊었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복숭아꽃 붉은 물에 은잉어요 보리고개 누럴 때는 석수어라 여윈 소 노린내 난 염소는 귀하기 옥 같으니 바다고을 풍미가 논수밭 채소를 당하네 대가 높다랗게 물가에 임청한데 사재에 글 읽는 소리 쾌활한 새벽이네 후생들은 한옹(寒翁)의 자취를 추감한데 애닯은 연년이 두약(杜若)의 봄이로다